추진 사업
추진 사업
‘해방촌의 시작은 해방 후, 한국전쟁 후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소’
탐방코스: 용산고 앞 -> 백팔계단 -> 미네르바스쿨(숭실학교터) -> 신흥시장 -> 해방교회 -> 해병대사령부초대교회-> 보성여중고 -> 해방촌 주민공동이용시설(도시재생지원센터) -> 용산기지 담벼락길 -> 해방촌 흔적문화길 -> 한신옹기 -> 미군기지 게이트21
남산아래 첫 마을, 해방촌.
용산역사문화사회적협동조합 황혜원 이사장님의 안내로 해방촌 탐방을 진행했다.
해방촌의 행정동명은 용산2가동. 해방촌은 해방 이후 남산자락 아래 형성된 마을로 실향민, 피난민의 동네로 시작했다고 한다.
“해방촌은 공동체성이 강했으나 90년대 이후 니트 산업이 사양산업화 되면서 젊은이들이 떠나고 새로운 도시 청년들이 찾고 있어요.
맛집이 많은 동네로 알려져 있으나 해방촌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으며 이태원과 인접해 있어
다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으며 용산공원(용산기지)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어요”
용산고등학교 앞에서 시작된 해방촌 투어.
용산고 건너편에는 미군기지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어 들여다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용산이 용산으로 이름 붙여진 사연은 일본군 기지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옛날부터 용산은 외국 군대의 주둔지였고 고려시대에는 몽골,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이,
일본군이 본격 주둔한 시기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과 맺은 한일의정서에 러시아와 전쟁을 위해 조선 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조약을 넣어
1906년 300만평의 땅을 강제수용 하려했으나 주민들의 저항으로 118만평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용산고를 지나 백팔계단 앞에 멈춰 섰다.
“전쟁에 광분하던 일제는 1943년 경성호국신사를 세웠죠. 백팔계단은 경성호국신사로 올라가던 계단으로 유일하게 남은 신사 흔적입니다.
일본은 전쟁에서 죽인 군인을 전쟁의 신으로 모시는 나남(19사단)과 해방촌(용산 일본군기지 20사단)에 경성호국신사를 건립했습니다.
1940년부터 시작해 1943년 준공했으나 해방 후 소명이 되었죠. 경성호국신사 건립에 학생을 비롯한 주민들을 강제 동원했으며
막대한 건립 비용은 노천명 등 명사(친일파)를 동원해 강제모금하였고, 호국신사를 전쟁동원, 강제징집에 활용했습니다.
일본이 패망하던 1945년에는 무려 1,141개의 신사가 조선 전역에 세워졌죠. 수많은 조선인들이 참배를 강요당하였고
정신적으로 일본 식민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백팔계단에 설치된 승강기>
이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백팔계단이 달리 보였다. 가슴 아픈 유물이 된 백팔계단.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 잃은 백성들의 아픔과 일제의 핍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미네르바 스쿨. 뜯겨나간 경성호국 신사터에 숭실학교가 세워지고 옛 숭실학교터에는 미네르바스쿨이 들어서 있다.
숭실학교는 3.1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신사참배 거부로 1938년 폐교 후 서울신당동(동척)과 대구 덕산동을 거쳐
용산동에 70년대 은평구 신사동으로 이전을 했다고 한다.
“숭실학교는 독립운동가를 키운 산실로(오산학교와 더불어) 조만식 선생, 윤동주 시인, 황순원 선생, 문익환 목사 등이 있어요.
미네르바대학은 베처창업가의 제안으로 신설, 온라인 기숙학교로 7개 도시에서 배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보다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고 있고 샌프란시스코, 런던, 베를린, 하이데리비드, 보에노스아이레스, 대만, 서울에 있어요”
미네르바스쿨을 지나 해방촌의 명소, 신흥시장을 찾았다.
신흥시장은 60년대 건물들을 토대로 리모델링을 하고 상인들과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예전에 해방촌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제공하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레트로 스타일의 시장을 찾는 젊은이, 외지 관광객들의 필수 답사 코스이기도 하다.
예전에 연예인 노홍철이 책방도 열었다고 하고, 지금은 가수 정엽이 운영하는 국수집과 카페가 있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다)
또,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가성비 맛집 횟집도 있다. 얼마 전 연어덮밥을 한 번 먹은 적이 있는데 진짜 맛있었다.
신흥시장을 지나 해방교회를 만났다. 해방교회는 해방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교회라고 한다.
그리고 해병대사령부초대교회도 가 보았다. 오래된 군인교회로 등록문화재 674호라고 한다.
다음으로 보성 여고를 지나서 해방촌도시재생지원센터에 이르렀다.
해방촌도시재생지원센터 사업 추진 시 주민들의 앵커시설로 구축되었다.
해방촌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지나 해방촌 문화흔적길에 도착했다.
60년대, 70년대를 경유하며 오늘날의 해방촌의 모습을 갖춰왔음을 보여주는 설치물들을 만났다.
마지막 코스는 미군기지 마지막 게이트21 앞.
“미군기지 마지막 게이트21 앞 해방촌의 시작은 해방 후, 한국전쟁 후 시작됐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이제 미군이 철수하고 다시 우리 땅으로 돌아오기에는 많은 절차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로 코앞에 두고 내 나라 내 땅을 걸어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게 용산의 현실이다.
황혜원 이사장님과 함께한 시간은 해방촌뿐 아니라 용산의 태동, 역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혼란스런 한국사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텨내온 용산이 새삼 사랑스러운 시간이었다.
이제 곧 용산공원이 들어서고 더 많은 이들이 용산을 찾을 것이다.
용산의 따뜻하고 눈물겨운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용산역사문화사회적협동조합의 문을 두드리시길.
(용산역사문화사회적협동조합 이메일: hhwkctu@daum.net)
글쓴이: 조정옥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