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2012년 사회적경제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사회적경제 자생력 강화와 생태계 조성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시작한 자치구 사회적경제생태계 사업단은 2015년 자치구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로 진화했다. 자치구 단위의 지원센터는 자치구 범위에서 사회적경제 생태계 활성화를 지원하며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경제 지역화를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각 자치구의 사회적경제 성숙도와 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설계와 결과 중심의 성과관리체계, 행정의 과도한 관여 등의 한계와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정책은 또 한번 새로운 전기를 앞두고 있다. 사회적경제 정책에 소극적인 시장이 재임한 것은 물론,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을 최대 9년까지 약속했던 서울시의 방침에 따라, 내년(2023년)이면 운영지원이 종료되는 센터들이 하나둘씩 나올 예정이다. 이에 그 중심에서 활동해온 서울시 자치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리더 3인(박용수 광진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장, 이종환 관악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장, 조정옥 용산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장)을 만나 중간지원기관의 역할과 자치구 센터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자치구 센터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박용수 광진센터장(이하 박용수) : 해방신학을 공부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빈민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그 후 영리(무역업) 일을 했지만 공허함이 느껴졌다.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시작한 게 자활사업이었다. 결혼 후 고향이었던 광진구에 다시 자리 잡으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마을기업 등 다양한 사회적경제 조직이 모인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했다.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는 돌봄, 교육, 주거복지 등 지역문제를 회원사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모으고 사업하는 것은 물론, 광진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를 위탁운영했다.
이종환 관악센터장(이하 이종환) : 관악주민연대라는 지역 풀뿌리조직에서 오래 일하며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졌다. 단체를 퇴직하던 무렵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궐선거로 나오며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울 때였다. 지역활동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마을공동체 사업에 참여했고, 첫 마을기업 인큐베이팅 사업을 맡아서 진행했다. 그때 사회적경제를 알게 되고 3년 정도 관련 활동을 했다. 2015년 관악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해 2020년부터 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정옥 용산센터장(이하 조정옥) : 신문사 기자, 방송국 구성작가로 일하다 결혼 후 10년간 경력단절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공동육아, 한살림 자원활동가로 활동했다. 일상생활에서 지역의 사회적경제 활동을 접했고, 지역 중심의 활동을 해보자 마음먹었다. 내가 사는 금천구에서 2013년부터 서울시 사회적경제 지역특화사업 사무국과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활동하며 사회적경제를 통해 교육문제, 지역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금천구에서만 활동하다 스스로 협소해지는 시각을 넓히기 위해 지역을 벗어나 용산구에서 현재 일하고 있다.
Q. 각 지역이 가진 특성은 무엇이며, 센터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이종환 : 관악구는 서울에서도 인구(49만명)가 적지 않은 자치구 중 하나다. 과거 철거운동이 활발했고, 서울대, 중앙대 출신의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지역에 남아 단체를 만들고 공부방이나 교회를 통한 전도활동을 하며 빈민운동을 해왔다. 전통적으로 시민사회가 활발한 지역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경제 활동이 이어졌고, 중간지원기관을 만들어 기업과 지역 간 접점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
현재 관악구에는 226개 사회적경제기업이 있고, 그중 45개 정도가 제대로 매출을 내면서 활동한다. 창업기보다는 5~10년 이상 된 성장기 기업이 많다. 센터는 2016년부터 사회적협동조합공동체관악이 위탁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기업과 기업 간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역 이슈에 대응하는 사업모델을 만드는데 집중해왔다. 관악구에서 수해로 사람이 사망하는 일이 생겼을 때에는 사회적경제가 공동대응체계를 꾸렸다. 공동모금을 비롯해 사회적경제기업이 나서 집수리 지원도 하고, 사회적경제기업 물품을 지원·소비하도록 유도하는 활동도 했다. 이 외에도 사회적경제 제품을 지역에 알리는 역할도 센터가 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지역사회 자원을 묶어서 새로운 전략사업을 고민하고 있다. 곧 민간위탁 종료 시점이라 최근에 종합성과평가를 받았는데 92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용수 : 광진구는 과거 광진주민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지역의 빈곤문제를 고민하며 지역자활센터를 위탁받았다. 자활센터 운영을 넘어서 지역 빈곤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며 활동한 결과,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인스케어코어와 같은 굵직한 자활기업들이 만들어졌다.
센터를 위탁운영하는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는 지역문제의 해결 및 대안 제시를 위해 사회적경제 조직간 네트워크 구성이라는 방법으로 2014년 만들어졌다. 현재 60여개 조직이 회원기업으로 참여하며 지역 내 사회적경제기업의 공동 사업 개발 및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회원 기업 간 상호거래와 연대를 통해 사업 규모를 확장하며 지역 내 경제공동체를 꿈꾼다.
광진구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타 지역의 경우 시민운동과 사회적경제가 분리되어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광진구는 사회적경제와 시민사회가 상호협력하며 함께 사는 경제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조정옥 : 용산구는 용산미군기지 반환운동,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 활동 등을 통해 시민사회 결집력이 좋은 자치구다. 반면 사회적경제의 역사는 짧다. 현재 사회적협동조합 인사랑케어가 센터를 위탁운영하며, 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정주하는 주거인구가 적다는 지역적 특성과 짧은 사회적경제 네트워크 역사로 지역성은 낮지만 기업들이 센터나 네트워크를 대함에 있어 편견이 없고 개방적이라 원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 사회적경제기업 리더들의 네트워크도 별도로 만들어 여성기업들이 지역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용산구는 현재 182개 사회적제기업이 활동 중이고, 지역 기반의 활동을 하는 기업보다는 서비스, 유통영역이 많고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많다. 용산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라는 특징을 살려 교육기업들이 지역투어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역 학교와 연계해 사회적경제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고민한다.
센터는 이런 지역 특징 속에서 사회적경제 네트워크를 구체화하고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고민은 임대료 상승으로 지역을 떠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성을 가지고 뿌리내리기는 어려운 환경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더라도 사회적경제 정체성을 잘 살려가도록 돕는 게 센터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Q. 사회적경제 생태계에서 중간지원기관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조정옥 : 중간지원기관에서 일하며 우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지원만 잘하면 되는지, 어떤 마음으로 지원해야 하는지, 우리가 기업을 평가할 수 있는지 등이다. 그때 내린 답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업이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가질 수 있도록 하고 그 영향력이 다른 기업이나 지역사회에 제대로 전파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또한 센터 사업예산이 크지 않기에, 지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해 기업에게 연결해주는 것도 중간지원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 용산 센터의 경우 지역 대학, 기업, 전문가 등을 발굴해 기업들과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지속해서 지역 사회적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한편, 서울시가 사회적경제 중간지원기관을 자치구별로 만들고 지원한지 10년이 넘었다. 당시의 환경과 현재의 환경에 변화가 있는 만큼, 사회적경제 생태계 활성화에 대한 방향과 중간지원기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모두가 고민해 재수정이 필요한 단계다.
이종환 : 정부에서 그동안 사회적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그러나 기업이 성장하는 만큼 중간지원기관도 성장해왔는지는 의문이다.
관악센터의 경우 몇 년 전 센터 미션을 ‘사회적경제가 사회적경제 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지역 선순환경제가 되도록 한다’로 정하고 그 기조에 맞게 기업들을 지원해왔다. 사회적 미션이 약한 곳은 그걸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다. 기업의 개별적인 성찰을 위해서는 조직된 무엇인가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의지 있는 기업들을 네트워크를 통해 성장시키는 걸 중간지원기관의 역할로 두고 있다.
박용수 : 사회적경제가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개별 기업의 혁신성이나 민주적 의사결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연꽃이 잘 자라려면 연못이라는 환경이 중요한 것처럼, 사회적경제 조직이 잘 성장하려면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러나 네트워크로 당장 기업에 수익이 나지는 않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이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누군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중간지원조직이나 연합회다. 단, 네트워크 조성과 운영에 대한 지원은 정부가 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성과지표 때문에 생태계 지원보다는 개별 기업을 지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해외의 생태계 조성은 산업클러스터 조성 등의 방식으로 기업 스스로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Q. 서울시가 2012년부터 사회적경제를 지원하는 센터와 사업단을 자치구별로 만들면서 대게 자치구나 시의 민간위탁기관으로 중간지원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성과와 과제는?
박용수 : 민간위탁의 방식도 다양한데, 서울시의 경우 센터를 민간이 위탁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그러나 실제 안을 들여다보면 민간에게 하도급을 주는 방식이라 자율성이 떨어진다. 중간지원조직이 ‘중간’인 이유는 민과 관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공동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은 행정이 관리는 철저히 하면서 성과에 대해서는 민간에게만 책임을 지운다. 앞으로는 용역, 포괄위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조정옥 : 처음 중간지원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위탁법인도 너무 급하게 만들어지고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력을 뽑아 사업을 했다.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충분한 고민과 설계의 시간이 부족했다. 요즘같이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여유를 가지고 성과와 과제를 돌아봤으면 한다. 위탁법인의 역량의 중요성도 느낀다. 위탁법인이 더 단단하다면 같이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다고 본다.
이종환 :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제대로 구성하고 확장했느냐를 중심으로 중간지원조직의 성과를 바라봐야 한다. 지금은 센터에서 모니터, 홍보, 전략사업 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금융, 마케팅 등 사회적경제를 지원하는 전문조직으로 발전해간다. 우리도 지금처럼 종합지원에서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치구 직영의 방식으로 운영되면 구청장이 바뀔 경우 사업이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더욱 생태계 중심의 지원으로 가야 한다.
2022년 10월 기준 현재, 서울시 25개 자치구 모두에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가 설립되어 운영 중이다. 이 중 자치구가 직영 운영하는 곳은 4곳(중랑구, 서대문, 동작구, 강동구)이며, 나머지 21개 자치구는 민간위탁 형태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3명의 리더들은 앞으로 민간의 자율성을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민간위탁 운영이 변화해야 하고, 10여년의 성과와 과제를 객관적으로 다시 되짚어 봐야 할 시기라고 직언했다.
Q. 중간지원기관의 활동가로서 어려운 점, 개선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이종환 : 센터에서 중간 리더 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해봤는데 다들 너무 바쁘다 보니 잘 모이지도 못하고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도 낮았다. 인재들이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박용수 : 센터는 행정이 협치를 위해 민간을 초대의 장으로 초청한 초청장이다. 초대장의 주인은 행정이지 민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 점을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무작정 빨려 들어가지 않고 초대의 장을 잘 활용해서 우리 사업을 단단히 하는 게 필요하다.
시민사회조직도 정부가 만든 중간지원조직이 생기고 그곳으로 활동가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많이 약화 되었다. 그 점을 잘 인지해야 한다.
조정옥 : 동의한다. 생태계조성사업에서 통합지원센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늘 2년, 3년 계약방식으로 고용계약을 맺으면서 그에 맞춰서만 살아갔다. 기간 연장 문제가 아니라 활동가들이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이 활동에 얼마나 가치를 두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면 어떤 무대를 가든 잘할 수 있다. 또한 중간지원기관도 자연스럽게 순환될 수 있도록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Q. 중간지원기관이 자기 역할을 하면서 지역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조정옥 : 기업들의 욕구와 행정의 욕구를 잘 파악해 연계하는 즉, 민과 관의 거버넌스를 잘 만들어가는 게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사회적경제간 네트워크가 탄탄해져야 한다.
이종환 : 서구 유럽사회를 보면 100년 정도 지나서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큰 기업들이 나온다. 그렇게 발전하기까지 여전히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마케팅, 판로, 금융 등 더 전문 영역의 중간지원기관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박용수 : 자활센터 초창기에는 직원들이 공동체에 들어가서 같이 자활기업을 만들었다. 그때 자활이 가장 혁신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경제 중간지원조직도 마찬가지다. 독립해서 외딴섬처럼 존재하지 않고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 사회적경제 주체로 역할을 하며 진일보하게 나아갔으면 한다. 그 속에서 사람도 만나고 새로운 사업의 기회도 살피면서 다양한 자기 전망을 고민해야 한다. 즉, 구성원들이 중간지원조직에 몸이 메이지 않고 유연해졌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실무자들의 사업 연계가 많아지면 중간지원조직의 성격 자체에 사업연합이 혼합된다. 중간지원조직의 예산이 없어져도 그 사업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걸 중간지원조직의 자원믹스라 본다.
출처 : 이로운넷(https://www.ero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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